YS·DJ의 연합적 민주주의, 오늘날 더욱 절실
YS·DJ의 연합적 민주주의, 오늘날 더욱 절실
19세기 말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대였다.
150년이 지난 현재의 역사가들 역시 이 시기를 평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해답은 하나에 있지 않다.
그나마 근대화를 위한 갑오개혁과 광무개혁이 지식인들과 백성들의 눈에는 단지 왕실을 위한 작업으로 비추었다.조선 왕의 지위를 자신과 같은 지위.그런데 임오군란으로부터 갑신정변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오만해진 청나라는 천 년이 넘도록 이어져 오던 전통적 조공관계를 뒤집었다.
일본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함께 해석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조선 정부는 떠 넣어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선 무능론만 대비 일본의 군국주의 읽지 못한 조선 청나라의 속국 정책에 크게 반발 대한제국 뒤늦은 개혁정책 한계 학계와 시민사회 인식차 좁혀야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었던 구한말1894~95년 청·일 전쟁에 종군했던 프랑스 언론인 조르주 비고가 묘사한 당시 한반도 주변 상황.그들이 과연 다산이 기롱(譏弄)한 잘못된 선비들은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전제군주 국가 시절의 이야기이니 통치자 군주야 갈아 치울 방법은 없으나.[중앙포토] 어진 재상(賢相)은 오늘로 보면 총리나 장관 등 고관대작이겠지만
입멸을 앞둔 붓다 곁에서 제자 아난이 슬피 울자 이렇게 말씀하신다.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이황(1502∼1571)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봬 고인을 못 봐도 여던 길 앞에 있네 여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여고 어떨꼬 -도산육곡판본(陶山六曲板本) 저 매화에 물을 주라 삶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