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퉁](단위: 위안)[강구퉁] (단위: 위안) (끝)
[선구퉁](단위: 위안)[강구퉁] (단위: 위안) (끝)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는 시들고.
더 깊이 이 모든 것이 싫어져 버린 사람들이 있다.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뿐.
인간 대 인간의 공감이라는 그 드문 기적이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거다.어째 내 삶을 내 손으로 통제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가.그러나 우주는 어쩌다 한 번씩 저자와 독자 사이에 공감의 기적을 허락한다.
또 다른 누군가가 옆에서 다가와서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거다.삶을 개선할 방안은 시야에 보이지 않는데.
아니 잘나 보이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 거지! 잘나 보이는 데 실패한 사람들은 오늘도 하염없이 토라져 간다.
다시 한번! 얼룩말처럼 용기를 내어 성실한 앞발을 세상으로 다시 내디뎌 보이지만.휠체어를 탄 사람이 공공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너무 큰 결심을 해야만 하는 사회가 여기에 있다.
주변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있다.어딘가 깊은 곳이 상처 입었는데.
남을 무분별하게 비난하면서 자기 존재의 존엄을 찾으려 드는 사회가 되어 간다.아파트 가격이 내려갈까 봐 그 경비원을 추모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