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외교·안보
통일·외교·안보
나라가 이런 상태로 가서야 되겠는가.
여기에는 당시 조선 정부와 개화파 지식인에 대한 평가가 그 핵심에 있었다.강화도 조약 이후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에 대한 개입.
장정의 내용에는 조선을 ‘속국으로 규정하였고.문제는 근대적 지식인들이 일본의 근대화가 민주주의적 개혁의 길이 아닌 군국주의의 길이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이다.근대화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세력과 식민지화를 주도한 세력이 다르기 때문에 두 논쟁은 다른 듯하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단 하나의 요인만을 강조함으로써 정치적 선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그 결과로서 맺어진 조약의 1조는 강화도 조약 1조와 함께 조선은 독립국이라는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근대화의 실패가 식민지화와 반(半)식민지화를 야기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성찰해야 할 역사적 이슈가 너무나 많다.김옥균의 생각은 루쉰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주로 국내 학자들은 일본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실시했고.
정치권에서 제기된 식민지 책임론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근 정치권에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제기되었다.일본을 모델로 삼은 개화파 지식인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의 청년들에게도 당시 일본은 이상적인 국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