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 구토 쏟아냈다…'트라우마 경고'까지 뜬 충격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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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동쪽 12리를 무슨 직위를 가진 아무개가 축조했다라는 식의 내용이 적힌 돌덩어리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탁본했다는 문구가 쓰여 있는 버전이었다.이 고구려 평양성 석편 탁본도 나와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구역별 담당 감독관이 자기 이름과 직함을 돌에 새겨 넣는 관례가 있었나 보다.글씨의 두 번째 줄 부분도 사라진 후였다.이번에는 전형필이 놀랐다.
그런데 김정희가 ‘세한도까지 줬던 그의 제자 이상적(1804~1865)의 수제자가 바로 오경석이었다.처음에 오세창은 이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겠다는 젊은이의 의지에 반신반의했다.
이들이 우리 고유의 역사와 기록을 발굴하고 보존하고자 했던 누대에 걸친 노력이 켜켜이 묻어있었다.
풍전등화 같은 개화기에 누구보다 세계정세에 밝았으나 제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던 선각자들.이 짧은 글에 적힌 선조들 이름이 모두 전시장 여기저기 등장한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석편이 그런 모양을 하고 있다.[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오경석이 구한 고구려 성벽 돌 부친 뜻 이어 아들 세창이 보존 전형필의 ‘문화재 스승 오세창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의 감동 이 보물을 처음 손에 넣은 이는 오경석(1831~1879)이었다.
원래 전형필과 오세창은 나이 차가 많았다.오경석은 이 석편을 1855년 평양부치(平壤府治) 서쪽 10리 지점인 오탄강변의 한사정(閑似亭)에서 보고 한양에 가져왔다라고 기록했다.